1995년 11월, 사무실에서 한 매체의 보도를 통해 그 소식을 들었다. EU가 한국산 전자제품에 확정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다는 발표였다. 전자레인지가 첫 타깃이었지만, 같은 흐름이 TV로 번지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이 업계 일치된 분석이었다.

당시 나는 KEC TV 사업부 입사 3년차, 유럽 시장 담당이었다. 한국 TV 메이커들에게 부과된 관세율은 회사별로 천차만별이었다 — 일신전자 24.4%, LG전자 18.8%, 대우전자 17.8%, 삼성전자 3.3%. 가장 낮은 삼성도 정상 무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숫자였고, 24%면 사실상 시장에서 나가라는 통보였다. 무엇보다 14인치 이상 TV의 EU 수출이 사실상 막혔다. 10인치 이하만 살아 있었다.

1995년은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한 해다. 그 해 한국은 중국, 인도 다음으로 EU의 반덤핑 제소를 가장 많이 받은 국가였다. 전자레인지, 카라디오, D램, 축전지, 전자저울이 차례로 막혔다. 다음은 TV 차례라는 것이 누구의 눈에도 명백했다.

대기업의 답, 그리고 중견기업의 자리

대기업들의 답은 정해져 있었다 — EU 현지 생산. 삼성, LG, 대우는 자본과 인력으로 유럽 안에 공장을 짓고 "현지 제조"로 관세를 우회했다. 그러나 KEC 같은 중견기업에게 EU 현지 공장 설립은 자본도 시간도 현실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그 시기 적지 않은 한국 중견 TV 메이커들이 EU 시장에서 사실상 철수하는 길을 택했다. 시장 철수가 가장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때 나는 두 가지 사실을 붙잡았다.

첫째, 10인치 이하 모바일 TV 시장은 작지만 살아 있었다. 그리고 KEC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거래해온 스위스의 Roadstar가 전 유럽에 10인치 이하 모바일 TV 유통망을 갖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신규 시장을 개척할 시간은 없었다 — 살아남는 길은 이미 신뢰가 쌓인 거래선의 살아 있는 유통망에 우리 제품을 태우는 것이었다. 시장 전체를 잃은 것이 아니라, 작은 한 점이 남아 있었다. 그 한 점에 모든 자원을 집중하기로 했다.

둘째, KEC는 이미 필리핀에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의 고임금을 우회하기 위한 원가절감 거점이었다. 그 사실에서 한 가지가 보였다 — 반덤핑 관세는 "한국 원산지"에 부과된다. 필리핀에서 만들면 "필리핀산"이다. 가격 경쟁력만 확보되면 14인치 이상 TV도 EU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이었다.

체코에서 온 독일어 의향서

이 두 가지를 머릿속에서 연결해 두고 있을 때,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체코의 KRTS라는 TV 조립 공장이 독일어로 SKD TV 구매의향서를 보내온 것이다. SKD(Semi-Knocked Down)는 반조립 상태로 수출해 현지에서 최종 조립하는 방식이다. 이 한 통의 의향서가 모든 가설을 실전으로 옮기는 방아쇠가 되었다.

필리핀 공장에서 14인치 이상 TV를 SKD 형태로 만들어 EU 각국으로 수출하는 구조 — 이른바 한국-필리핀-EU 삼각무역 — 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핵심 부품과 기술이 흐르고, 필리핀에서 조립과 원산지를 만들고, EU 시장에서 매출이 일어나는 구조였다. 10인치 이하 모바일 TV는 한국에서 직수출하고, 14인치 이상은 필리핀 SKD로 우회하는 이원 체계가 정착되었다.

1998년, 흐름이 우리 편에 섰다

이 구조가 정착된 직후, 또 한 번의 흐름이 우리 편에 섰다. 1997~98년 IMF 외환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1,900원까지 치솟았다. 한국산이든 필리핀산이든 우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이 폭발적으로 살아났다. 그 결과 포르투갈의 MEI Europa Lda.로부터 단번에 1백만 달러 상당의 L/C를 수취하기도 했다. 시장이 죽었다고 모두가 믿었던 그 자리에서, 우리는 매출을 회복하고 키워나갔다.

KEC TV 사업부에서 내가 담당한 EMEA + CIS 시장은 그 후로도 연 5,000만 달러 규모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2002년 KTV Global Corporation으로 분사한 후에도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30년 후 한국 SME 사장님들께

오늘, 한국 SME들은 다시 비슷한 충격 앞에 서 있다. 미중 관세전쟁, EU CBAM, 트럼프 관세, 곳곳의 비관세 장벽들 — 시장이 정치적으로 막히는 시대가 다시 왔다. 그때마다 내가 떠올리는 것은 1995년의 두 가지 교훈이다.

첫째, 시장이 막혔다고 해서 사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막힌 부분과 살아 있는 부분을 분리해서 보면, 작더라도 반드시 살아 있는 한 점이 있다. 그 점에 자원을 집중하라. 전체를 회복하려는 욕심이 오히려 그 작은 점마저 놓치게 만든다.

둘째, 가격 경쟁력만 있으면 길은 반드시 생긴다. 관세도, 인증도, 환율도 결국 최종 소비자 가격으로 환원된다. 가격을 만드는 구조 — 생산 거점, 원산지, 무역 구조 — 를 재설계하면 막힌 시장이 다시 열린다. 영업은 단순히 "더 열심히 파는 일"이 아니다. 사업의 구조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지금 나는 ICT 분야에서 같은 신념으로 일하고 있다. 모든 길이 막혀 보이는 순간에도,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 나가면 반드시 길은 보인다. 1995년의 한국 TV가 그랬고, 2008년 보안제품으로 EU 27개국에서 1,000만 달러 매출을 만들었던 시기도 그랬고, 지금의 ICT 사업도 그렇다.

길은 항상 있다. 단지 보이는 자리에 없을 뿐이다.